응급실에서 근무하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CRP 수치를 들여다봅니다. 열이 나는 환자, 극심한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 구토와 설사가 멈추지 않는 환자—이들의 혈액 검사 결과지에서 제가 가장 먼저 확인하는 항목 중 하나가 바로 CRP입니다. 숫자 하나가 이 사람이 지금 얼마나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는지를 말해주기 때문입니다.CRP가 뭔지 알면 혈액검사 결과지가 달리 보입니다CRP, 즉 C-반응성 단백(C-Reactive Protein)은 우리 몸에 염증이 생겼을 때 간에서 만들어져 혈류로 분비되는 급성기 반응 물질입니다. 여기서 '급성기 반응 물질'이란 염증이나 감염이 시작된 직후부터 수 시간 안에 혈중 농도가 빠르게 올라가는 단백질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몸속 어딘가에서 불이 났을 때 가장 먼저 연기..
LDL 수치 하나 높다고 스타틴을 처방받고 돌아온 날, 저는 솔직히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응급실에서 수백 건의 혈액검사 결과를 봐온 입장에서, LDL 하나만 보고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게 과연 맞는 건지 의문이 생겼거든요. 그런데 최근 심혈관 예측력 연구들을 들여다보니, 그 의문이 틀린 게 아니었습니다. LDL보다 훨씬 위험한 지표가 오랫동안 우리 시야 밖에 있었던 겁니다.LDL만 보면 놓치는 것 — 잔여 콜레스테롤의 정체혈액검사 결과지를 받으면 네 가지 수치가 나옵니다. 총 콜레스테롤, HDL(고밀도 콜레스테롤), 중성지방(TG), LDL(저밀도 콜레스테롤). 그런데 저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이 네 수치를 거의 공식처럼 외웠는데, 막상 각각이 어떤 구조로 연결되는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