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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L 수치 하나 높다고 스타틴을 처방받고 돌아온 날, 저는 솔직히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응급실에서 수백 건의 혈액검사 결과를 봐온 입장에서, LDL 하나만 보고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게 과연 맞는 건지 의문이 생겼거든요. 그런데 최근 심혈관 예측력 연구들을 들여다보니, 그 의문이 틀린 게 아니었습니다. LDL보다 훨씬 위험한 지표가 오랫동안 우리 시야 밖에 있었던 겁니다.



LDL만 보면 놓치는 것 — 잔여 콜레스테롤의 정체

혈액검사 결과지를 받으면 네 가지 수치가 나옵니다. 총 콜레스테롤, HDL(고밀도 콜레스테롤), 중성지방(TG), LDL(저밀도 콜레스테롤). 그런데 저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이 네 수치를 거의 공식처럼 외웠는데, 막상 각각이 어떤 구조로 연결되는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 혈액 안에는 크기가 다른 지질단백질(Lipoprotein) 입자들이 여러 종류 떠다닙니다. 여기서 지질단백질이란,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 같은 지방을 혈액 속에서 운반하는 단백질 복합체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콜레스테롤을 몸 곳곳으로 실어 나르는 '택배 박스'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LDL도 그 택배 박스 중 하나고, VLDL(초저밀도 지질단백질)이라는 박스도 있습니다. VLDL이란 중성지방을 주로 싣고 다니는 더 큰 크기의 입자인데, 이 VLDL 안에 들어 있는 콜레스테롤이 바로 '잔여 콜레스테롤(Remnant Cholesterol)'입니다.

계산 방법은 간단합니다. 총 콜레스테롤에서 LDL과 HDL을 빼면 나오는 수치가 잔여 콜레스테롤입니다. 그동안 중성지방 수치가 높은 환자를 볼 때, 저는 '기름진 음식을 많이 드시거나 음주량이 많은 분이구나' 정도로만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중성지방 수치가 높다는 건, 그 안에 박혀 있는 잔여 콜레스테롤이 많다는 신호였던 겁니다. 이 부분이 제가 전혀 생각치 못했던 지점입니다.

최근 연구들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사실은, 이 잔여 콜레스테롤이 LDL보다 약 4배 이상 심혈관에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도 있습니다. LDL은 혈관 벽을 손상시키려면 산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잔여 콜레스테롤은 산화 없이도 주변 대식세포에 바로 흡수되어 거품 세포를 만듭니다. 거품 세포가 쌓이면 동맥경화 플라크가 형성됩니다. 과정이 하나 짧다는 게 그만큼 더 빠르고 직접적으로 위험하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주류 의학이 오랫동안 잔여 콜레스테롤을 상대적으로 경시해온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중성지방을 낮추는 약인 피브레이트(Fibrate)가 중성지방은 잘 낮추면서도 잔여 콜레스테롤은 20~40% 정도밖에 감소시키지 못했고, 심혈관 예방 효과도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그래서 '중성지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이 굳어진 겁니다. 반면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는 저탄고지 식이는 중성지방과 잔여 콜레스테롤을 효과적으로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출처: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의 최신 이상지질혈증 진료지침에서도 중성지방 관리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는 방향으로 내용이 갱신되고 있습니다.

  • 잔여 콜레스테롤 = 총 콜레스테롤 − LDL − HDL
  • VLDL 내부의 콜레스테롤로, 산화 없이도 동맥경화를 유발
  • 심혈관 위험도는 LDL 대비 약 4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
  • 중성지방 수치가 높을수록 잔여 콜레스테롤도 함께 증가
요약: 혈액검사에서 놓치기 쉬운 잔여 콜레스테롤이 LDL보다 심혈관에 4배 이상 위험하며, 중성지방 수치가 그 간접 신호다.

 

LDL도 ApoB도 — 진짜 심혈관 예측 지표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LDL은 이제 안 봐도 되는 걸까요? 저도 그 질문이 먼저 들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LDL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LDL 수치 하나만 보는 것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핵심 문제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피검사에서 보는 LDL 수치는 LDL 입자 안에 든 콜레스테롤의 '무게'를 잰 것입니다. 그런데 심혈관 위험은 무게보다 '입자 수'에 비례합니다. 같은 무게라도 입자가 작고 조밀한 스몰 덴스 LDL(Small Dense LDL)이 많으면 혈관 벽을 더 쉽게 통과하고 더 많은 수가 들어가니 훨씬 위험합니다. 스몰 덴스 LDL이란, LDL 입자 중에서도 크기가 작고 밀도가 높아 혈관 내피를 파고들기 쉬운 형태를 말합니다.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면 이 입자가 작아지는 방향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비유가 꽤 유용하다고 느꼈습니다. 도로 위 차량의 총 무게가 같아도 차량 대수가 많으면 교통사고 확률이 높아지는 것처럼, LDL 무게가 같아도 입자 수가 많으면 위험하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기존 LDL 수치로는 이 '대수'를 알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지표가 바로 ApoB(아포지단백 B)입니다. ApoB란, 모든 LDL·VLDL·스몰 덴스 LDL 입자에 정확히 한 개씩 붙어 있는 단백질을 말합니다. 마치 모든 페트병에 뚜껑이 한 개씩 달려 있듯, ApoB를 세면 병 크기와 관계없이 정확히 몇 개가 있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ApoB 수치 하나로 LDL 입자 수, 스몰 덴스 LDL, 잔여 콜레스테롤 입자까지 한꺼번에 반영됩니다.

2021년 영국 바이오뱅크 데이터를 포함한 43만 명 규모의 메타분석(출처: American Heart Association Journals)에서, 다변량 보정 후 심혈관 질환을 유의하게 예측한 지표는 ApoB뿐이었고, non-HDL(비HDL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HDL 비율(TG/HDL)은 예측력이 사라졌습니다. 특히 심근경색을 한 번 경험한 2차 예방 대상자에서는 그 격차가 더 벌어졌습니다. 심근경색 재발을 예측한 지표도 ApoB가 가장 강력했습니다.

그렇다고 TG/HDL 비율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TG/HDL이란 중성지방 수치를 HDL 수치로 나눈 비율로, 인슐린 저항성을 반영하는 간편한 지표입니다. 이 수치가 2 이하면 양호, 3.5 이상이면 인슐린 저항성 및 당뇨 위험이 높다고 봅니다. 저도 검사 결과를 볼 때마다 이 비율을 계산해보는 습관이 생겼을 정도로 유용합니다. 다만 LDL 정보를 전혀 담지 못한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고, ApoB가 이를 포함하여 더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데 현재 연구들은 대체로 수렴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 가지 시각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LDL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과 "LDL만 보면 된다"는 주장이 서로를 향해 충돌할 때, 사실 두 진영 모두 ApoB라는 공통 언어를 도입하면 논쟁 자체가 상당 부분 해소됩니다. LDL 수치가 높아도 ApoB가 낮으면 실제 입자 수가 적다는 의미이고, LDL이 정상이어도 ApoB가 높으면 작은 입자가 많다는 신호니까요. 응급실에서 수치 하나만 보고 환자 상태를 판단하면 위험한 것처럼, 지질 지표도 단일 수치만으로 판단하는 건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제 경험상 느낍니다.

ApoB 정상 목표치는 80 mg/dL 이하가 권장되며, 100을 넘으면 생활 습관 교정이 필요하고 120 이상은 적극적인 치료를 고려해야 합니다. 6개월마다 ApoB를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ApoB/ApoA1 비율(0.6 미만이 양호)까지 함께 보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정밀한 심혈관 위험 평가 방법으로 보입니다.

요약: ApoB는 LDL 입자 수·스몰 덴스 LDL·잔여 콜레스테롤을 한 번에 반영하는 지표로, 현재 가장 강력한 심혈관 예측 지표다.

 

자주 묻는 질문

Q. LDL 수치가 정상인데 ApoB가 높을 수 있나요?

A. 충분히 가능합니다. LDL 수치는 콜레스테롤의 무게를 재는 것이라, 입자 크기가 작고 수가 많은 경우 무게는 정상으로 나와도 ApoB는 높게 나올 수 있습니다. 탄수화물 섭취가 많아 스몰 덴스 LDL 비율이 높은 분들에서 이런 상황이 자주 나타난다고 봅니다.

 

Q. 잔여 콜레스테롤은 어떻게 낮출 수 있나요?

A. 칼로리를 적절히 줄이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만으로도 잔여 콜레스테롤이 의미 있게 감소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저탄고지 식이도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있지만, LDL이 동시에 상승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 부작용 없이 개선하려면 칼로리 조절과 운동 병행이 현실적으로 유리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Q. TG/HDL 비율과 ApoB 중 어느 걸 더 믿어야 하나요?

A. 두 지표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헤드투헤드 비교 연구에서 ApoB가 심혈관 예측력에서 앞서는 결과가 일관되게 나오고 있고, TG/HDL은 LDL 정보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습니다. 가장 종합적으로 확인하려면 ApoB를 기본으로 보고, TG/HDL로 인슐린 저항성을 보조적으로 확인하는 방식이 유용합니다.

 

Q. ApoB 검사는 일반 내과에서 받을 수 있나요?

A. 네, 1차 의료기관에서도 요청하면 검사가 가능합니다. 다만 현재 표준 지침에 아직 전면 반영되지 않아 의사마다 검사를 권유하는 정도가 다를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직접 요청하면 대부분 검사를 해주는 편입니다.

 

결론

응급실에서 혈액검사 결과를 수없이 들여다보면서도, 잔여 콜레스테롤이라는 개념을 이렇게 깊이 들여다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LDL, HDL, 중성지방이라는 익숙한 틀 안에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정작 가장 위험한 조각이 그 사이에 조용히 끼어 있었던 겁니다.

LDL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반대로 LDL만 보면 된다거나 — 이 두 주장 사이에서 저는 어느 한쪽이 완전히 맞다고 보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ApoB라는 지표가 그 논쟁을 상당 부분 정리해줄 수 있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앞으로 저도 6개월마다 ApoB 수치를 확인하고, 잔여 콜레스테롤까지 함께 의식하는 방향으로 혈액검사를 해석하는 수준을 높여나가려 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XxzBZIWepH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