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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산은 강산(염산)이라 세균이 살 수 없다고 오랫동안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국내 성인 절반이 위 속에 세균을 키우며 살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저도 3교대 간호사로 일하면서 만성 소화불량을 달고 살다 보니, 우리 어머니가 헬리코박터균 진단을 받았을 때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찌개 하나를 같이 떠먹었을 뿐인데 균이 옮길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헬리코박터균 감염경로와 진단검사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는 위 점막에 서식하는 세균입니다. 여기서 '파일로리'란 위와 십이지장이 연결되는 부위인 유문부(pylorus)를 뜻하는 말로, 이 균이 주로 그 일대의 점막에 달라붙어 염증을 일으킨다는 의미입니다. 1983년 호주의 의학자 워렌과 마셜이 처음 위에서 이 균을 분리·동정해내면서 "위에도 세균이 산다"는 사실을 의학계가 처음 인정하게 됐고, 두 사람은 이 업적으로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출처: Nobel Prize).
감염 경로는 아직 100%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습니다. 다만 구강 대 구강(oral-oral), 또는 분변 대 구강(fecal-oral) 경로, 즉 오염된 음식이나 식기를 통해 전파된다고 보는 것이 현재 학계의 주된 시각입니다. 제 경험상 이게 그냥 이론이 아니라는 걸 어머니 치료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실감했습니다. 같은 찌개에 숟가락을 함께 넣고 떠먹는 식습관, 술잔을 돌리는 문화가 일상적인 우리나라에서 감염률이 유독 높은 이유가 거기 있다고 저는 봅니다. 실제로 국내 성인의 약 50%가 이 균에 감염돼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있으며, 일본·중국 등 동아시아권은 유럽·북미에 비해 감염률이 전반적으로 높은 편입니다.
진단 방법은 크게 내시경 동반 검사와 비(非)침습적 검사로 나뉩니다.
- 신속 요소 분해 효소 검사(CLO test): 내시경 중 위 점막 조직을 소량 채취해 시약에 넣으면 색깔이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변할 경우 양성으로 판정합니다. 쉽게 말해 균이 분비하는 효소가 시약의 색을 바꾸는 원리입니다.
- 조직 생검: 채취한 조직을 특수 염색해 현미경으로 직접 균을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 요소 호기 검사(UBT, Urea Breath Test): 특수 가루약을 삼킨 뒤 빨대로 숨을 내뱉어 날숨 속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합니다. 여기서 UBT란 균이 요소(urea)를 분해할 때 발생하는 가스를 포집해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로, 치료 후 제균 성공 여부를 확인할 때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됩니다.
- 혈액 항체 검사: 채혈을 통해 헬리코박터 항원 또는 항체 유무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대규모 집단 검진에서 주로 쓰입니다.
5년 전 제가 위내시경을 받았을 때는 표재성 위염, 즉 위 점막 표면에 붉은 염증 기운이 살짝 있는 상태라는 소견을 들었고 헬리코박터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때는 안도했지만, 어머니가 양성 판정을 받고 나서 보니 같은 밥상에서 수십 년을 먹어온 가족 사이의 감염 가능성을 그냥 넘길 일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헬리코박터균이 일으키는 질환과 치료법
일반적으로 헬리코박터에 감염돼도 특별한 증상이 없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게 오히려 더 무서운 이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소화불량 정도는 생길 수 있지만 대부분은 모르고 지내다가 만성 위염이 진행되고, 더 나아가 소화성 궤양이나 위암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화성 궤양(peptic ulcer)이란 위 또는 십이지장 점막이 헐어서 파여 나간 상태를 말합니다. 이 단계가 되면 속 쓰림, 복통, 심한 경우 토혈(피를 토하는 것)이나 흑색변(변이 새까맣게 나오는 것)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궤양 출혈이 심하면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헬리코박터는 세계보건기구(WHO)가 1994년부터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한 균입니다(출처: WHO). 위암 외에도 MALT 림프종이라는 위 점막 연관 림프 조직 종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여기서 MALT란 'Mucosa-Associated Lymphoid Tissue'의 약어로, 위 점막 면역 세포가 헬리코박터 감염에 반응하며 종양으로 변하는 질환을 뜻합니다. 다만 감염됐다고 해서 모두가 위암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위암 발생률은 감염자 중 1% 미만으로 알려져 있으니 지나치게 공포를 가질 필요는 없고, 그보다는 제때 발견하고 치료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치료는 항생제 2종과 위산 분비 억제제(PPI, Proton Pump Inhibitor)를 병용하는 삼제 요법이 1차 표준입니다. PPI란 위벽에서 위산을 분비하는 펌프를 직접 차단하는 약물로, 위내 산도를 높여 헬리코박터가 활발히 증식하게 유도합니다. 균이 빠르게 증식하는 상태일 때 항생제 효과가 극대화되기 때문에 이 조합이 필수입니다. 치료 기간은 보통 1~2주이며, 1차 치료에 실패하면 2차 치료로 넘어갑니다.
브로콜리, 양배추 같은 음식이 헬리코박터를 없애주지 않겠냐고 저도 한때 기대했습니다. 실험 수준에서 위 점막을 보호하는 효과가 일부 확인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음식만으로 균을 제균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머니 치료를 옆에서 지켜보니 결국 항생제 처방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고, 정해진 기간 약을 꼬박꼬박 복용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브로콜리는 보조적으로 곁들이는 식품이지, 치료제가 될 수 없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되면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하나요?
A. 무조건 치료해야 한다고 알려진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는 소화성 궤양이 있거나 위암 가족력이 있는 경우, 혹은 위암 전단계 병변이 확인된 경우에 치료를 우선 권고합니다. 감염 자체만으로 무조건 공포를 가질 필요는 없고, 전문의와 상담해 본인 상태에 맞는 판단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Q. 가족 중 한 명이 헬리코박터 양성이면 다른 가족도 검사받아야 하나요?
A. 저도 어머니가 양성 판정을 받은 뒤 이 고민을 했습니다. 구강 접촉이나 식기 공유로 전파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식탁을 오래 공유한 가족이라면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함께 찌개를 떠먹는 식습관이 있었다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Q. 헬리코박터 치료 후에 재감염도 되나요?
A. 제균 치료에 성공해도 재감염 가능성은 있습니다. 특히 감염원이 된 생활 습관, 즉 찌개 공유나 술잔 돌리기 같은 것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재감염 위험은 낮아지지 않습니다. 치료 후에는 요소 호기 검사(UBT)로 제균 성공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Q. 위내시경은 몇 살부터 받는 게 좋을까요?
A. 국가 건강검진 기준으로는 만 40세부터 2년에 한 번 위내시경을 받도록 돼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우처럼 30대에도 만성 소화불량이나 표재성 위염이 발견되는 사례가 있습니다. 자극적인 음식을 즐기거나 가족력이 있다면 30대부터 검사를 시작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저는 봅니다.
Q. 브로콜리나 양배추를 먹으면 헬리코박터가 없어지나요?
A. 위 점막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실험 결과는 있지만, 이 음식들로 헬리코박터균을 제균할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 치료 과정을 지켜본 제 경험상, 보조 식품으로 드시는 건 좋지만 항생제 처방을 대체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결론
3교대 간호사로 일하면서 위장 건강을 챙기기 쉽지 않다는 걸 몸으로 압니다. 불규칙한 식사, 야근 후 맵고 짠 음식으로 때우는 끼니가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위가 먼저 신호를 보냅니다. 저는 그 신호를 그냥 만성 피로로 넘겼는데, 어머니의 헬리코박터 진단이 경각심을 일깨운 계기가 됐습니다.
정리하면, 헬리코박터균은 감염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보다는 모르고 방치하는 것이 더 위험합니다. 국내 성인 두 명 중 한 명이 감염 상태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30대부터는 위내시경을 통해 헬리코박터 감염 여부와 위 점막 상태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히 마라탕, 떡볶이, 짠 국물류를 즐기는 식습관과 찌개 공유 문화가 일상인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