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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깨질 듯 아픈데 약국 앞에서 멍하니 서본 적 있으십니까. 진통제 종류가 이렇게 많은데 뭘 골라야 할지 몰라 그냥 제일 유명한 걸 집어 들고 나온 경험, 저도 여러 번 있습니다. 응급실 간호사로 일하면서 진통제를 하루에도 수십 번 다루다 보니 뒤늦게야 알게 됐습니다. 어디가 아픈지, 얼마나 아픈지, 몸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골라야 할 약이 전혀 달라진다는 것을.

진통제 종류, 강도 순서로 알면 쉽습니다
진통제를 고를 때 기준이 없으면 늘 같은 약만 집게 됩니다. 제가 응급실에서 배운 가장 실용적인 기준은 바로 '강도 순서'입니다.
가장 순한 것부터 정리하면,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이 출발점입니다. 아세트아미노펜이란 타이레놀의 주성분으로, 뇌에서 통증 신호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작용하는 성분입니다. 위장에 부담이 거의 없고 부작용이 적어서, 응급실에서도 첫 번째로 투약하는 약이 바로 이겁니다. 저도 웬만한 환자에게는 아세트아미노펜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효과가 약하다고 느껴지면 다음 단계가 있습니다. NSAIDs(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계열로 넘어가는 겁니다. NSAIDs란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효소를 억제해서 통증과 염증을 동시에 줄이는 약물군을 말합니다. 이부프로펜 200mg, 이부프로펜 400mg, 덱시부프로펜, 나프록센 순으로 강도가 올라갑니다.
응급실에서 NSAIDs 계열인 케토신 같은 약을 주사로 투약했을 때, 먹는 약으로는 잘 안 듣던 분들이 20~30분 만에 통증이 잡히는 걸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래도 안 되면 트라마돌(tramadol) 계열인 트리돌까지 올라갑니다. 트라마돌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진통 성분으로, 일반 NSAIDs로 조절되지 않는 중등도 이상의 통증에 쓰입니다.
- 아세트아미노펜 → 이부프로펜 200mg → 이부프로펜 400mg → 덱시부프로펜 → 나프록센 순으로 강도 상승
- 아세트아미노펜 + 이부프로펜 병용 시 단독보다 강한 효과 가능
- 연질 캡슐 제형은 정제보다 흡수가 빨라 약효 시작이 10~15분으로 단축됨
- 나프록센은 약효 지속이 최대 8시간으로, 일반 진통제(4~5시간)보다 오래 지속됨
증상별 진통제, 두통·치통·생리통이 다릅니다
진통제는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두통에 잘 듣는 약과 치통에 잘 듣는 약이 실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두통의 경우, 편두통이나 긴장성 두통에는 아세트아미노펜으로 시작해볼 수 있지만 효과가 약하다면 나프록센이 더 낫습니다. 카페인이 복합적으로 들어간 게보린 같은 제품이 두통에 잘 듣는다는 의견도 있는데, 장기 복용 시 카페인 의존으로 인한 반동성 두통(rebound headache)이 생길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반동성 두통이란 진통제를 끊었을 때 오히려 두통이 더 심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을 모르고 카페인 복합 진통제를 습관적으로 드시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치통은 통증 강도 자체가 다른 편입니다. 잇몸 염증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 염증을 함께 억제해주는 덱시부프로펜이나 나프록센이 효과적입니다. 아세트아미노펜만으로는 치통이 잘 안 잡히는 경우를 응급실에서도 적지 않게 봤습니다. 물론 치통이 며칠 이상 지속된다면 진통제로만 버티는 것은 좋지 않고 치과 진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생리통에는 이브 같은 전용 제품이 있고, 더 강한 진통 효과가 필요할 때는 아세트아미노펜과 이부프로펜을 병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근육통이나 요통에는 덱시부프로펜 또는 나프록센에 근육이완제를 함께 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감기 몸살에는 덱시부프로펜에 생약 제제를 더하는 방식도 쓰입니다. 체력이 좋은 편이라면 갈근탕, 허약한 체질이라면 패독산이 오한과 몸살 증상에 도움이 됩니다.
주의사항, 몸 상태에 따라 진통제가 달라집니다
진통제를 고를 때 주의사항을 모르면 오히려 몸을 해칠 수 있습니다. 응급실에서 직접 본 사례들을 보면 이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됩니다.
위장이 민감한 분들은 아세트아미노펜이 가장 안전합니다. NSAIDs 계열은 위 점막을 자극할 수 있고, 특히 나프록센은 이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강한 편입니다. 콩팥 기능이 걱정되는 분들도 마찬가지로 아세트아미노펜이 가장 부담이 적습니다. 진통제를 드신 후 소변량이 줄거나 소변 색이 진해진다면, 콩팥에 무리가 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으므로 약을 바꾸거나 간격을 늘리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심혈관 문제로 저용량 아스피린을 처방받아 복용 중인 분들에게는 이부프로펜이나 덱시부프로펜이 아스피린의 혈전 억제 작용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나프록센이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더 안전한 선택지는 아세트아미노펜입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통합정보시스템).
간 수치가 높은 상태에서는 모든 진통제가 부담이 됩니다. 이럴 때는 가능하면 진통제를 피하고 병원 처방을 받는 것이 맞습니다. 특히 간 기능이 저하된 상태에서 음주와 진통제를 병행하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합니다.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응급실에서 통증을 호소하는 분들 중에는, 진통제를 투약한 지 5분도 안 됐는데 아직도 아프다며 추가 투약을 요청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약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최소 30분은 기다려야 합니다. 심지어 마약성 진통제를 드시는 항암 환자분들도 통증이 빨리 잡히길 바라는 마음에 과용량을 드시다가 정신이 혼미해지는 상황을 여러 번 봤습니다. 진통제는 더 많이 먹는다고 빨리 낫는 게 아닙니다. 정해진 용량을 지키고 약효가 나타날 시간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출처: 약학정보원).
자주 묻는 질문
Q. 타이레놀이랑 이부프로펜을 같이 먹어도 되나요?
A. 네, 아세트아미노펜과 이부프로펜은 작용 기전이 달라 병용이 가능하고, 실제로 둘을 함께 복용하면 단독 복용보다 강한 진통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만 각각의 권장 용량을 지키는 것이 전제입니다. 본인의 기저 질환이나 복용 중인 약이 있다면 약사와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Q. 진통제 먹고 얼마나 지나야 효과가 나타나나요?
A. 일반 정제 기준으로 보통 30분에서 1시간 사이에 약효가 시작됩니다. 연질 캡슐 제형은 흡수가 빨라 10~15분 내에 효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응급실에서도 투약 후 5분 만에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최소 30분은 기다려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Q. 위장이 약한데 그래도 이부프로펜 먹어도 되나요?
A. 위장이 민감한 분들에게는 아세트아미노펜이 가장 부담이 적은 선택입니다. 이부프로펜이나 나프록센 같은 NSAIDs 계열은 위 점막을 자극할 수 있어, 공복에는 되도록 피하고 식후 복용을 권장합니다. 효과가 필요하면서도 위장 부담을 줄이고 싶다면 덱시부프로펜이 이부프로펜보다 상대적으로 위 부담이 적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Q. 두통에 게보린이 잘 듣던데 계속 먹어도 되나요?
A. 카페인이 들어간 복합 진통제는 단기 두통에 효과적이지만, 장기적으로 반복 복용하면 카페인 의존으로 인해 오히려 두통이 더 잦아지는 반동성 두통이 생길 수 있습니다. 두통이 한 달에 열흘 이상 반복된다면 이 패턴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고, 이런 경우에는 카페인이 없는 나프록센 계열로 바꾸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결론
진통제는 아무거나 집어도 된다는 생각, 저도 이 일을 하기 전엔 그랬습니다. 지금은 확실히 다르게 생각합니다. 아프다는 신호는 같아도,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에 따라 선택해야 할 성분과 강도가 달라집니다.
정리하면, 순한 것부터 시작해서 효과가 부족할 때 강도를 올리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위장·콩팥·간·심혈관 중 하나라도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에 맞는 성분을 먼저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약효는 기다려야 합니다. 이 세 가지만 지켜도 진통제를 훨씬 현명하게 쓸 수 있습니다. 그래도 통증이 계속되거나 복용 중인 약이 있다면, 가까운 약사나 의사에게 직접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